낙랑때 황금허리띠 버클
1㎜도 안 되는 용 이빨
1㎜도 안 되는 용 이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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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를 거쳐 1900여 년전 이땅에 온 용 무늬 새김 황금 버클. 그 안에 깃든 경이로운 고대인들의 마이크로 세공술이 실체를 드러냈다.
화제의 유물은 1916년 평양 석암리 9호 옛무덤에서 출토된, 길이 9.3cm의 1세기 낙랑시대 금허리띠 버클(국보 89호)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은 특별전 ‘신라 서아시아를 만나다’(11월30일까지)에서 전시 중인 이 유물의 정밀 확대 사진을 최근 공개했다.
정밀 판독 결과, 버클 안에 손톱보다 작은 크기로 새김된 큰 용 아가리 속에는 혀는 물론 뻐드렁니와 무수한 이빨들이 금판 혹은 금알갱이로 만들어져 붙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훨씬 작은 여섯 마리 새김 용들도 모두 아가리 속에 금알갱이 이빨을 붙이고 있었다. 발톱 달린 용의 다리 언저리에는 미세하지만 듬직한 보주 장식까지 붙여 놓았다. 오영찬 학예관은 “이빨과 다리 장식들은 직경 1mm도 안 되는 금알갱이, 금실로 일일이 짜넣은 것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 버클은 한반도에서 나온 가장 오랜 금속 공예품 중 하나다. 말발굽 모양 금판에 큰 용 1마리와 작은 용 6마리를 두들겨 드러내는 타출기법과 금실, 금알갱이를 붙이는 누금기법으로 수놓았다. 중국 신장, 요녕성, 윈난성에서도 거의 같은 모양새의 버클이 나와 실크로드 교류를 실증하는 대표 유물로 꼽힌다.
경주/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박물관
종 목 | 국보 제8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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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平壤 石巖里 金製鉸具) |
분 류 | 유물 / 생활공예/ 금속공예/ 장신구 |
수량/면적 | 1개 |
지정(등록)일 | 1962.12.20 |
소 재 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
시 대 | |
소유자(소유단체) | 국유 |
관리자(관리단체) | 국립중앙박물관 |
평안남도 대동군 석암리 9호분에서 출토된 금제교구로, 길이 9.4㎝, 너비 6.4㎝이며, 허리띠를 연결시켜주는 금제 장식이다.
머리쪽이 넓고 둥글게 되어 있으며, 안쪽에 이와 평행하게 휘어진 구멍을 만들었고 걸 수 있는 고리를 만들어 허리띠를 매게 하였다. 틀을 만들어 그 위에 금판을 놓고 두드려 용의 윤곽을 만들고 금실과 금 알갱이로 큰 용 한마리와 작은 용 여섯마리를 만들었다. 가장자리는 금실을 꼬아서 돌렸고, 안으로 일정한 넓이의 삼각형을 만들었다. 용과 용사이에는 꽃잎모양의 윤곽을 만들고 그 속에 비취옥(玉)을 끼워 넣었는데 현재 7개만이 남아 있다. 금실을 이용하여 장식하는 누금세공(鏤金細工)의 수법이 매우 뛰어나며, 용 7마리의 배치도 율동적으로 표현된 뛰어난 작품이다. 1916년 평남(平南) 대동군(大同郡) 대동강면(大洞江面) 석암리(石巖里) 제9호 고분(古墳)에서 발견되었다. 앞이 둥글고 뒤가 네모진 원형(原型) 조각 위에 금판(金板)을 덮어 놓고 두드려 7룡문(龍文)을 낸 다음 그 위에 금사(金絲)와 크고 작은 금사(金絲)을 장식한 이른바 Filigree라는 누금세공품(鏤金細工品)이다. 장식은 7룡(龍)이 주된 문양이 되어 있는데 중심부에 자리잡은 큰 용 1마리와 작은 용 6마리를 앞이 둥글고 뒤가 네모진 형대 금구(金具) 위에 자유스럽고도 율동적인 솜씨로 배치해 놓았다. 용과 용 사이의 간지(間地)에 작은 우점형(雨點形) 금테두리를 만들고 그 안에 고운 비취옥을 감입(嵌入)했던 자취를 남기고 있으나 현재 원상(原狀)대로 남아 있는 것은 7군데뿐이다. 금빛과 비취옥의 담록색(淡綠色) 조화가 매우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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